기아 스팅어란 어떤 차였나 — 콘셉트카에서 단종까지, 12년의 기록
기아가 만든 유일한 후륜구동 그란투리스모. 6년을 개발하고 6년을 팔린 뒤 사라졌다. 스팅어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남겼는지 처음부터 정리했다.
핵심 요약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GT 콘셉트가 원형. 양산까지 6년이 걸렸다
디자인은 피터 슈라이어·그레고리 기욤의 유럽 스튜디오, 주행 성능은 전 BMW M 출신 알버트 비어만이 맡았다
2017년 5월 국내 출시, 2023년 단종. 글로벌 누적 판매 138,378대
1. 36년 만의 후륜구동
스팅어를 이해하려면 이 차가 나오기 전 기아가 어떤 회사였는지부터 봐야 한다.
기아가 마지막으로 후륜구동 중형 세단을 만든 건 라이선스 생산했던 피아트 132였다. 그게 단종된 뒤로 36년 동안 기아의 승용 라인업에는 후륜구동이 없었다. 앞바퀴를 굴리는 실용적인 세단과 SUV, 그것이 기아였다.
2010년대 초 기아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려 하고 있었다. 아우디 출신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로 데려와 '호랑이코 그릴'로 정체성을 만들어냈고, K5가 상품성으로 시장을 뒤흔든 직후였다. 디자인으로 인식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 다음 과제는 주행 성능이었다.
그 답으로 나온 것이 스팅어다.
2. 2011 프랑크푸르트, GT 콘셉트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기아는 'GT 콘셉트'를 공개했다. 4도어 쿠페 형상에 긴 보닛, 짧은 오버행, 뒤로 길게 흐르는 루프라인. 관람객보다 업계가 더 놀랐다. 기아가 이런 비례의 차를 그렸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이었다.
디자인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기아 유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총괄은 피터 슈라이어, 실무를 이끈 건 유럽 디자인 총괄 그레고리 기욤이었다.
기욤은 후일 스팅어 디자인의 뿌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 자란 자신이 보았던 그란투리스모들 — 파리에서 생트로페까지 사람을 힘들이지 않고 실어 나르던 차들. 차체 측면의 잘록한 볼륨은 코카콜라 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다.
중요한 건 이 콘셉트가 쇼카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6년 뒤 나온 양산차는 콘셉트의 비례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콘셉트카가 양산 단계에서 무너지는 게 일반적인 업계에서, 스팅어는 예외였다.
3. 2014 디트로이트, GT4 스팅어
이야기가 한 번 갈라진다. 201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아는 'GT4 스팅어'라는 다른 콘셉트를 내놨다. 이쪽은 캘리포니아 스튜디오 작품으로, 2도어 2+2 쿠페에 315마력 2.0 터보와 6단 수동변속기를 얹은 후륜구동 스포츠카였다. 토요타 86의 경쟁자를 상상한 차에 가까웠다.
GT4는 양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팅어(Stinger, 침을 쏘는 것)'라는 이름은 여기서 살아남아 3년 뒤 양산차에 붙었다. 지금도 두 콘셉트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팅어의 직접적 조상은 2011년 GT 콘셉트이고 GT4는 이름을 물려준 사촌 격이다.
4. 비어만이 합류하다
디자인은 준비됐다. 문제는 그 디자인에 맞는 주행 성능이었다.
2015년 현대차그룹은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했다. BMW M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엔지니어링 부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M3와 M5를 만들던 사람이 현대·기아로 온다는 소식은 당시 업계에서 상당한 화제였다.
비어만은 스팅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름다운 디자인에는 강력한 주행성능이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스팅어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서킷 주행과 드리프트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차"라고.
5. 뉘르부르크링에서 보낸 시간
말로만 끝난 게 아니다. 스팅어 개발차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최소 480랩, 약 10,000km를 돌았다. 프로토타입 전체가 소화한 주행거리는 지구를 27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 유럽, 아시아, 중동, 남·북미의 극한 기후 테스트가 여기에 더해졌다.
남양연구소와 뉘르부르크링을 오가며 다듬은 결과는 하체에서 드러난다. 지금도 스팅어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서스펜션 세팅인 이유다.
기술적으로도 기아에게는 여러 개의 '최초'였다.
기아 승용 최초의 4륜구동(AWD) 시스템
기아 승용 최초의 런치 컨트롤
전륜 맥퍼슨 스트럿 / 후륜 5링크 멀티링크
노면에 따라 감쇠력을 바꾸는 전자제어 서스펜션
구조용 접착제 173m, 측면 핫스탬핑을 적용한 고강성 차체
6. 2017년, 양산차가 나오다
2017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양산형 스팅어가 공개됐고, 국내에는 2017년 5월 23일 출시됐다.
차체 치수는 전장 4,830 × 전폭 1,870 × 전고 1,400mm, 휠베이스 2,905mm. 5도어 패스트백 구조로, 트렁크가 유리와 함께 열린다. 제네시스 G70과 후륜구동 플랫폼을 공유한다.
국내 사양에는 기아 엠블럼 대신 알파벳 E 모양의 전용 엠블럼이 붙었다. 후륜구동의 세로 배치 엔진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기아 차에 기아 로고를 달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스팅어를 별개의 무언가로 취급하겠다는 의지 표시에 가까웠다.
초기 파워트레인 (2017~2020)
엔진 | 최고출력 | 최대토크 | 비고 |
|---|---|---|---|
3.3 V6 람다 II 트윈터보 | 370ps / 6,000rpm | 52.0kg·m | 고급유 기준 |
2.0 세타 II 터보 | 255ps / 6,200rpm | 36.0kg·m | 고급유 기준 |
2.2 R e-VGT 디젤 | 202ps / 3,800rpm | 45.0kg·m | 2020년 6월 단종 |
모두 8단 자동변속기, 후륜구동과 4륜구동 중 선택.
3.3T의 370마력은 당시 국산차 기준으로 압도적인 수치였다. 공차중량 1,785kg(2WD 19인치)에 이 출력이면 0-100km/h 4초대가 가능했고, 실제로 기아는 그렇게 홍보했다.
7. 연식별 변화
2017년 8월 17일 — 드림 에디션 추가 기계식 차동제한장치(M-LSD), 브렘보 대향 피스톤 캘리퍼, 크롬 보닛 에어인테이크가 들어갔다. 지금 중고 시장에서 브렘보 유무를 따지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다.
2018년 5월 24일 — 2019년형 8인치 플로팅 내비게이션, 리어 LED 방향지시등, 6컬러 무드조명.
2020년 6월 — 2.2 디젤 단종 판매 부진. 그란투리스모에 디젤이라는 조합은 결국 자리를 찾지 못했다.
8. 2020년 8월, 스팅어 마이스터
2020년 8월 27일, 상품성 개선 모델 '마이스터'가 나왔다. '장인'이라는 뜻의 독일어를 이름에 붙였다.
외형 변화는 크지 않다. 좌우를 길게 잇는 수평형 리어 콤비램프와 시퀀셜 턴시그널이 가장 눈에 띄고, 하위 트림 헤드램프가 할로겐 1구 프로젝션에서 4구 LED(MFR)로 바뀌었다. 신규 18·19인치 휠, 듀얼 트윈 머플러가 적용됐다.
실내는 10.25인치 내비게이션, 퀼팅 나파가죽 시트, 앰비언트 라이트, 스웨이드 컬렉션이 들어가며 체감 변화가 컸다.
파워트레인이 핵심이다.
엔진 | 최고출력 | 최대토크 |
|---|---|---|
3.3 V6 트윈터보 | 370 → 373ps | 52.0kg·m |
2.5 스마트스트림 T-GDI | 255 → 304ps | 43.0kg·m |
255마력 2.0T가 304마력 2.5T로 교체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4기통 모델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3.3T도 소폭 상향됐다.
2021년 9월 6일, 국내 사양에도 E 엠블럼 대신 기아의 새 로고가 적용되고 스포일러가 추가됐다. 브랜드 통합의 흐름 속에서 스팅어만 예외로 두던 정책이 끝난 시점이다.
9. 마지막 — 트리뷰트 에디션
2022년 12월 21일, 기아는 '트리뷰트 에디션'을 내놨다. 이름 그대로 헌사였다.
3.3 가솔린 터보 GT 트림 기반
전용 외장색 애스코트 그린, 문스케이프 매트 그레이
19인치 휠·아웃사이드 미러·캘리퍼 블랙 처리
전용 테라코타 브라운 인테리어, 카본 무늬 콘솔·도어 가니시
헤드레스트에 말벌 모양 엠블럼
국내 200대 / 해외 800대 한정
가격 4,825만 원 (개별소비세 3.5% 기준)
한 달 전인 2022년 11월 11일에는 영국 수출이 중단됐고, 그 자리를 EV6 GT가 대신했다. 후륜구동 가솔린 GT의 역할이 전기차로 넘어가는 장면이었다.
10. 왜 단종됐나
2023년 4월, 광명공장 생산라인이 EV9으로 전환되면서 스팅어 생산이 종료됐다. 6월 1일부로 기아 홈페이지에서 스팅어 항목이 사라졌다.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138,378대.
국내 성적은 냉정했다. 기아의 목표는 연 12,000대였지만 출시 첫해 6,122대에 그쳤고 이후 매년 줄어 월 300~400대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형제차 G70에 밀렸다. 같은 플랫폼에서 나온 제네시스 G70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점을 안고 같은 고객을 가져갔다
세단 시장 자체가 줄었다. 스팅어가 팔린 6년은 SUV가 시장을 잠식한 6년과 정확히 겹친다
전동화 전환. 라인 하나를 EV9에 내주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잘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 만들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던 차에 가깝다.
11. 스팅어가 남긴 것
스팅어의 의미는 판매량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이 차를 만들면서 기아는 후륜구동 플랫폼, 고출력 터보 파워트레인, 고성능 하체 세팅 노하우를 확보했다. 비어만이 이끈 조직은 이후 N 브랜드로, 그리고 EV6 GT를 비롯한 고성능 전기차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인식이 바뀌었다. 스팅어 이전과 이후, '기아가 성능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달라졌다.
중고 시장에서 스팅어가 여전히 존재감을 갖는 이유도 여기 있다. 370마력 후륜구동 6기통 그란투리스모를 이 가격대에서 살 수 있는 선택지는 앞으로 나오기 어렵다. 스팅어는 다시 나올 수 없는 조건에서 만들어진 차다.